* 글의 출처는 네이버의 '일절하'카페 회원님이신 '적양'님 입니다.

사실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단은 거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는, 모국어로의 해석을 기반으로 해서 익히는 방법과
최근에 영절하로 구체화된, 외국어 자체를 기반으로 해서 익히는 방법, 이렇게 말이죠.

우선 '모국어로의 해석'을 기반으로한 외국어 습득, 이것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우선 '번역'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
사실 '번역'이라는 것은 서양에 있어서는 매우 오래된 문화인데요,
적어도 동양문화권에서 '외국어' 에 대한 '번역'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개항기의 일본이었습니다.

물론 전혀 다른 문화권으로서 중국의 '한문'을 사용한 한국과 일본은,
사실 이 '한문'을 번역해서 쓴 것이 아니라, '한문'을 그냥 사용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어'라는 '말'은 존재했지만,
'한글'이 본격적으로 '글자'로 쓰인 것은 200년도 채 안되니까요.
(그 이전에는 理文이라 해서, 비속어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다시말해 적어도 '쓰기'의 측면에서는 당시의 '중국어'를 구사했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개항기 일본이 '영어'를 접하는 방식입니다.
일본의 개항은 '미국'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은 잘들 아실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언어인 '영어'의 사용이 국가적으로 굉장히 시급한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당장에 전혀 생소한 언어를 네이티브처럼 구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더군다나 서양의 '침입'은 어디까지나 갑작스러운 것이었으므로,
유학생이 존재할 리도 없었죠.
그래서 해결한 것이 바로 '문법을 통한 번역'입니다.

이 '문법'이라는 것이 실은 굉장히 재밌는 것인데,
전세계적으로 '주어'와 '서술어', '수식어' 등등이 없는 언어는 거의 없죠.
다시말해 어느 언어의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각 단어나 구절의 문장성분만 파악해 낼 수 있다면(문장분석),
이 단어들을 '사전'을 바탕으로 모국어로 '바꾸고'(단어해석),
다시 모국어의 어순에 맞게 배열(재배열)합니다.
그렇게 되면, 거의 완벽하게 외국어의 문장을 모국어의 문장으로 '바꾸어 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실제로 영어를 구사하는 인재들을 키우기 보다는,
급한불끄듯, 일단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관원을 대대적으로 양성합니다.
다시말해 '번역술'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법'과 '번역'을 통한 외국어 이해도 한가지 방법인 것은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문법'이라는 '문장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일종의 '과학'적이고 '연역적인' 언어이해 방식인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어느정도 '기술적으로 습득'이 된다면,
마치 '수학을 오래한 사람이 문제를 쉽게 풀 듯' 그 외국어도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터 '해석(사실 해석이라기 보다는 번역이 정확한 단어사용이죠)'을 바탕으로
외국어 습득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최고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학교나 외국어교육기관에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문법'이란게 있기 때문에 '가르치기 수월'하고, 또 '평가'하기에 '편하며',
번역을 하기 때문에 '결과물'의 존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문법'을 통한 '번역'은, '번역'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번역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번역술'에 기초한 외국어 습득은,
어딘가 목적이 변질된 방식이라고, 역사적으로 더듬어 주장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람들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방식은 어떠하였을까요?
물론 그때의 외국어라 하면, '한문'뿐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말은 '한국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했지만,
글은 '한문'을 썼습니다.

이건 굉장히 특이한 것인데요, 왜냐하면,
한국어와 한문은 어순 등, 그 언어적이고 문법적인 특질이 전혀 다른,
전혀 상이한 언어권의 언어이기 때문이죠.

다시말해, 과거 한국 사람들, 적어도 '학문'과 '출세'의 기회가 보장된 이들에게 있어,
'한문'이라는 '외국어'는 반드시 습득해야할, 하나의 목표이자 기재가 아닐 수 없는데요.
그들이 사용한 언어 습득 방식은 다름아닌 '무수히 많은 양의 한문 텍스트를 음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천자문>이라는 것을 아실런지 모르겠는데요,
드라마나 영화 등에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데 자주 등장하는
"하늘 천 따 지~"로 시작하는 한문텍스트죠.
물론 실제로는 <천자문>이 아니라 다른 텍스트를 가장 먼저 배우지만
(아마 <동몽선습>일 겁니다... 기억이 잘...) 이들이 이 한문 텍스트를 익히는 방식은,
일정한 음율을 기초로 해서 수없이 큰소리로 음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당의 '훈장'은 이들이 이를 제대로 하는지,
그리고 수많은 음독을 통해서 과연 '암송(암기가 아닌)'을 해낼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김홍도의 <서당>(훈장이 나오고 동자 하나가 울고 있고, 주위에 벗들이 웃고 있는 장면)을 보면,
아이가 훈장을 등지고, 책도 등지고 울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책의 내용을 암송하는 것을 검사받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수없는 음독을 통해서 익힌 '한문'을 그 때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면, 중국사람들과 적어도 '글'로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집니다.
중국의 서적을 읽는 다던가, 서신왕래를 한다던가, 필담을 나눈다던가,
우리나라의 한시가 중국에서도 익힌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다시말해, 적어도 글 면에서는 네이티브 수준이 되었다는 겁니다.
 
단순히 수없이 음독한 것이 어떻게, 외국어 습득의 방식이 되고,
창조적인 언어생활이 가능해지는가? 라고 묻는다면,
즉, 단순히 음독만 많이 했을 뿐인데, 어떻게 옛날 사람들은
한문을 쓰고 읽을 수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바로 언어라는 것의 '인지적인 측면'을 대답해 줄 것입니다.

90년대에 들어서 '교육학계'에는 일대의 패러다임적인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인지혁명'이죠.
이 인지라는 것은, 사람이 무언가를 '지식'화할 때는,
반드시 기존에 구성된 구조(schema)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예를 들면, 내일이 '친구'의 생일이라는 정보를 접했다면,
기존의 스키마에 따라서, 친구의 생일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에게 초대를 할 것이고,
나는 그 초대에 응해서 갈 때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새로운 '지식'을 구성해낸다는 겁니다.

이러한 '인지'는 '언어학'에 있어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데요,
이후 사람들은 '언어'가 뇌 속의 어떤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게 됩니다.
즉, 어느 특정 언어를 담당하는 장치, 기계, 부분이 따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죠.
이것은 제가 느끼기에도 굉장히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며,
사실 이제는 거의 통설로 다뤄지고 있기도 합니다.

'인지 과정' 혹은 '인지 구조'를 놓고 본다면,
과거 한국사람들의 수많은 음독을 통한 '한문'의 습득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겠죠.
적어도 그 시대 사람들은 단순히 수없이 많이 음독하고 거의 암송할 정도로 한문을 익히면,
어느 정도 '한문'으로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해진다라고 여겼던 겁니다.
물론 '인지'니 '스키마'니 이런 것을 알았을리는 없다고 보여지지만,
적어도 '한문의 스키마, 한문의 인지구조'를 생성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수많은 '음독'이죠.

주저리 주저리 써댔지만, 이러한 저의 외국어 습득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는,
사실 제가 영절하 방식으로 외국어를 익히는데 나름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처] 일본의 영어 '번역술', 그리고 한국의 한문 '습득술' (일본어공부절대하지마라(일절하)) |작성자 적양

번역술로 번역은 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어일 뿐이고,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모국어처럼, 제2 국어로 만들 수 없습니다.
번역은 한계가 있습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도 하죠..
당장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이런 시어의 뉘앙스를 살려가며 번역 가능한 분 계신가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제2 국어, 2개 국어 구사는 그저 2개의 언어로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택시를 타고 말을 건네는 정도를 말하는게 아닌것이구요,
대학에서 2개 국어로 수업을 받는다든가, 높은 수준의 토론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죠.
시험을 위한 언어보다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로 받아들이는것,
외국어로 받아들이는것보다 제2 국어로 받아들이는것,
몰입(immersion)보다 침잠(submersion)이 중요합니다.
더 궁금하신게 있으면 아래의 영상을 봐주세요.


2004년 2월에 방송되었던 EBS 일요 특강입니다.
강사는 하버드 대학교 교육 대학원의 Catherine Snow 교수입니다.
오하이오주 오벌린 대학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교 철학박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일반언어학 부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교수
現 하버드대 교육 대학원 교수입니다.
특강 제목은 "영어교육, 고정관념을 버려라"입니다.
  1. 쿠나 2008/11/08 22:28 답글수정삭제

    오오 그렇군요 잘 봤습니다 ㅇㅅㅇ..
    우리나라 명박이의 영어몰입술은 어떠련지 갑자기 대조가 되네요 ㅋ..

  2. 초서 2009/06/16 05:54 답글수정삭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100배 공감입니다. ^^

  3. 김봉춘 2010/01/26 18:37 답글수정삭제

    영어로1부터20까지영어로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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